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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하라(於瑕羅)의 강인한 백성들이여, 그리고 나를 따라 이 거친 패대 땅을 일궈온 가(加)와 대로(對盧)들이여!
보아라, 저 붉은 핏빛 노을을 머금고 울부짖듯 요동치는 패수(浿水)의 물결을!
기암절벽 사이를 거칠게 뚫고 나온 조백하의 강물이 백 개의 대박(大舶) 배 밑창을 사정없이 때리고, 갈대 서슬 푸른 강가에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거칠게 몰아치고 있다. 저 멀리 첩첩이 둘러싸인 조백하의 거수(巨水)와 사방을 호위하듯 솟아오른 거친 암벽들은, 지난 세월 온갖 풍파를 장악하며 이 땅에 대국의 기틀을 다진 우리의 기상과 어찌 이리도 닮아있단 말인가! 천지를 붉게 물들이는 저 장엄한 석양과 도도한 강줄기는, 지난날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을 묵묵히 증명해 주고 있다.
지난 10 주야의 세월이 이 장엄한 풍광 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사방 500리의 늪지와 잡목 우거진 황무지를 개간하여 풍요로운 옥토를 만들고, 부(部)를 나누어 법도를 세우기까지 우리가 흘린 눈물이 얼마이며 바친 피땀이 얼마였던가! 엄동설한의 모진 칼바람이 조백하를 얼려버릴 때에도,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이 땅을 지켜냈다. 그 고생과 노고는 저 패수의 조약돌 하나하나, 저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틈마다 깊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의 기억은 우리 골수(骨髓)에 가장 뜨거운 문신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 터전을 떠나려 한다.
결코 유리(琉璃)에게 밀려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맏아들 비류와 둘러앉아 밤새 고심한 것은, 서로 칼을 겨누어 단군(檀君)의 자손끼리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함이요, 저 남녘의 기름진 웅천(熊川)과 한산(漢山)의 대지에 우리만의 더 크고 위대한 새 천년을 열기 위함이다!
보아라! 조백하의 거친 물살 위에 웅거한 저 백 개의 거대한 대박(大舶)과 뗏목들을!
저 박(舶)배들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우리 어하라국의 해상 통제력과 야철(冶鐵) 기술의 정수가 담긴 결정체이자, 새로운 바다를 열어젖힐 거대한 의지다!
비록 거친 고대해(古代海)의 파도가 앞길을 가로막고, 낯선 마한의 소국들이 우리를 경계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사방 500리를 통치해 온 강인한 지혜가 있고, 단단하게 벼려진 철검(鐵劍)과 무장들이 있다!
낙심하지 마라. 두고 가는 저 푸른 산천에 눈물 흘리지 마라!
우리가 가꾼 어하라의 기상이 우리를 비출 것이며, 조백하의 푸른 신령이 우리의 앞길을 호위할 것이다. 우리는 남쪽의 비옥한 해안과 강줄기를 따라,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라, 아니 수백 번을 건너도 무너지지 않을 찬란한 천년의 제국을 세울 것이다!
나 소서노가 돛대 끝에 서서 조백하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겠다. 내 지혜가 길을 열고, 내 심장이 너희의 등불이 될 것이다!
새로운 대지, 우리의 위대한 미래를 향하여, 대박(大舶)의 닻을 올리고 힘차게 나아가자!“
맨 앞의 선두에선 소서노의 연설은 그녀의 품성과 열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고구려를 떠나와 황량한 대지와 승냥이 울음소리로 가득했던 패대지역을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바꾸어내는 10년의 시간과 이제 막 새로운 기회의 땅을 향해 돛을 올리는 어하라 땅의 백성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때는 전한(前漢)의 제11대 황제 성제(成帝) 홍가 2년, 기원전 19년 3월이었다.
“와”
“와”
“와”
“와”
조백하의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늘어선 100여 개의 대박(大舶, 해외 무역선이나 거대한 군함)의 모습은 그 광경 자체만으로도 절경이었으며, 모든 배마다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는 기암절벽을 뚫고 발해만의 지축을 뒤흔들었다.
“출항하라!”
소서노의 서슬 퍼런 명령에 오간(烏干)은 두껍고 묵직한 고퇴(가죽 북채)를 높이 들어, 큰 북을 크게 내리치며 복명복창하였다.
“출항하라!”
깃대 끝에는 삼족오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깃발이 바다 바람을 맞아 세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두~웅”
“두~둥”
“모든 배는 돛을 올리고 출항하라!”
오간(烏干)의 명령에 각 배마다 상의를 탈의한 거구의 군사들이 일제히 큰 북을 울렸다.
그들은 3월의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북을 두드려댔다.
"둥-! 둥-! 둥-!"
거대한 진군북(전고, 戰鼓)을 울리며 마침내 어하라 소서노의 부족은 미추홀을 향해 대박을 움직였다.
잘 있거라!
조백하(潮白河)의 맑은 물아.
강바닥의 둥근 자갈과 수많은 모래알들아.
물 마시러 내려온 노루며, 멧돼지며, 호랑이며.
느려진 강물과 바다 끝이 만나 펼쳐놓은
은빛 모래톱과 갯벌의 속살
전사의 키를 훌쩍 넘는 갈대와 부들아,
너희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거다.
너희들도 마중 나와 인사하누나.
버드나무야, 느릅나무야, 신갈나무야.
사방 초록빛 그늘을 드리우던 한여름의 너희를 기억하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북녘에서 날아와 하늘 까맣게 뒤덮던
청둥오리며, 기러기며, 두루미며.
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이름 모를 산새의 영롱한 울음소리,
태양을 향해 쏴올린 화살처럼 솟아오르던 독수리의 용맹함을 어찌 잊으리.
바람으로 밀어다오.
폐수(浿水)의 겨울 바람으로 밀어다오.
저 먼 시원(始原)의 땅까지
쉼 없이 중단없이 끊임없이 밀어다오.
거친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조백하(潮白河)의 계곡을 타고 바람이 불어왔다.
용의 머리로 장식된 이물(배의 선두)에 선 소서노의 머리 속에는 지나온 10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유리가 북부여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기원전 43년, 단기 2292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인(戊寅)년 4월의 사건으로...
고구려의 기억이 떠오르자 소서노는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잊어야 한다. 이제 새로운 나라를 세우러 가는 마당에 고구려의 기억이 무에 중요하다고...’
소서노가 울적한 마음을 털어내고 있을 때 배에서는 어느새, ‘물마루를 타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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