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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논단] 민천주의: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혁명적 평등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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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논단] 민천주의: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혁명적 평등사상

21세기에 되살아나야 할 한국 고유의 민주사상

요즘 우리 사회는 양극화, 차별, 혐오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세대 간·성별 간·지역 간 갈등은 깊어만 간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150여 년 전 이 땅에서 싹튼 '민천주의(民天主義)'라는 혁명적 사상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이 사상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겪어온 차별과 억압에 맞선 철학적 저항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평등과 존엄의 원리다.

 

민천주의는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수운(1824-1864)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에서 출발한다. "내 마음에 하늘님을 모신다"는 시천주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조선 후기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만이 아니라 상민도, 천민도, 여성도, 어린아이도 모두 천주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서구의 천부인권 사상이 전래되기 이전에 우리 땅에서 자생적으로 싹튼 인간 존엄 사상이었다.

 

2대 교주 최시형 해월(1827-1898)은 이를 더욱 구체화하여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事人如天)"고 가르쳤다. 단순히 내 안의 하늘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하늘을 대하듯 공경하라는 것이다. 해월은 "어린아이도 때리지 말라, 그 속에 하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쳤다. 이는 아동인권의 선구적 사상이었다. 또한 "부인을 때리지 말라, 부인도 하늘님을 모셨다"며 여성 평등을 주장했다. 당시 유교 사회에서 여성과 어린이는 인격적 존재로 대우받지 못했던 현실을 생각하면, 이는 실로 혁명적 발상이었다.

 

3대 교주 손병희 의암(1861-1922)에 이르러 이 사상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명제로 정리되고, 나아가 민천주의로 체계화된다. 개인 차원의 영성 수양을 넘어 사회 구조의 변혁을 요구하는 정치·사회 사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손병희는 "민(民)이 곧 천(天)"이라 하여 민중이 역사의 주체임을 천명했다. 이는 1919년 3·1운동을 주도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이후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민천주의가 지닌 현대적 의미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민천주의는 인간 존엄성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서구의 인권 사상이 신의 형상(Imago Dei)이나 이성적 존재라는 근거에서 출발한다면, 민천주의는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동양적 표현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서구 사상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 토양에서 자생한 보편적 가치다. 오늘날 인권이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 전통 속에 이미 인간 존엄의 철학이 존재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민천주의는 평등사상의 실천적 기반이다. 추상적 평등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차별 철폐를 요구한다. 신분 차별, 성차별, 연령 차별을 넘어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원리를 제공한다. 해월이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한 것은 단순한 윤리적 권고가 아니라, 어린이도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문제가 되는 성차별, 학력 차별, 지역 차별, 세대 차별 등은 모두 민천주의 정신에 비추어볼 때 극복해야 할 과제다.

 

셋째, 민천주의는 민주주의의 토착적 기반이다. 민주주의가 서구에서 수입된 제도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민천주의는 한국 사회 내부에서 자생한 민주적 가치를 보여준다.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명제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리와 상통한다. 다만 민천주의는 정치적 권리만이 아니라 존재론적 평등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더 근본적이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천주의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인식되고 실천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민천주의를 낡은 종교 교리 정도로 치부하거나, 아예 그 존재조차 모른다. 학교 교육에서도 동학농민운동이나 3·1운동을 다루면서 민천주의의 사상적 의의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정신적 유산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문화적 빈곤을 드러낸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차별과 불평등에 직면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격차, 수도권과 지방의 기회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청년 세대는 공정과 평등을 외치지만, 그 목소리는 때로 다른 약자 집단에 대한 혐오로 변질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인간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의 전환이다.

 

민천주의는 바로 그런 시각의 전환을 제공한다. 내가 대하는 모든 사람 안에 하늘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택배 노동자도, 청소 노동자도, 요양보호사도 모두 하늘을 모신 존재다.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도, 나와 세대가 다른 사람도, 나와 성별이 다른 사람도 모두 하늘이다. 이런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는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은 다른 방식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민천주의는 결코 낡은 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정신적 자원이다. 150여 년 전 이 땅의 민중들이 신분제와 차별에 맞서 외쳤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려 퍼져야 할 외침이다. 우리는 이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재발견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실천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가 민천주의에 답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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