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5 (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베이징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는 소문이 해외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제시되지 않았다. 북한 관영매체는 20일 김 위원장이 전날
부인 리설주 여사, 딸 김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시회를 둘러보는 사진을 공개하며 건재를 드러냈다. 우리 외교·안보 부처 당국자들도 해당 소문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진원지는 ‘중국민주당 주석’ 자처하는
셰완쥔
이번 사망설의 출발점은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쥔(謝萬軍)이 엑스(X)에 올린 게시글이다. 영국 더선,
미국 뉴욕포스트, 인도 이코노믹타임스 등 외신은 그의 게시물을 소문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셰완쥔은 18일께부터 올린 글에서 베이징 협화의원 의료진이 17일 북한에 파견됐으나 현지 의료 여건이 열악해 김 위원장을 베이징으로 이송했고, 김 위원장이 치료 도중 숨져 시신이 비밀리에 북한으로 운구됐다고 주장했다.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권력은 딸 김주애가 아니라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장악했다는 내용, 중국 공산당이 김주애의 권력 승계를 돕기 위해 병력 9천 명을 평양에
보냈다는 내용까지 덧붙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주장에도 구체적 증거나 출처는 제시되지 않았다.
◆ 외신 인용 타고 우크라이나·튀르키예까지
셰완쥔의 게시물은
19일(현지시각) 더선과 뉴욕포스트 등이 인용
보도하면서 단숨에 국제 뉴스로 번졌고, 우크라이나와 튀르키예 언론도 이를 재인용했다. 다만 이들 외신 역시 보도 과정에서 주장을 뒷받침할 독립적 근거가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일부 국내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의 만남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르겠다”는 답을 되풀이한 것이 의혹을 키웠다고 전했다.
◆ 허위 주장 이력 거듭된 인물
소문의 신빙성은 진원지의 이력에서부터 흔들린다. 셰완쥔은 중국에서 불법 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의 주석을 자처하며 그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망설 등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잇달아 올려 온 인물이다. 2024년 7월에는 시 주석이 회의장에서 끌려 나가는 모습이라며
사진을 퍼뜨렸으나,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를 풍자용
합성물로 판정했다.
올해 9월에는
시 주석이 인도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도중 쓰러졌다고 주장했지만, 인도 매체 인디아투데이는 그의 주장이 중국의 공식 발표와 어긋난다고 짚었고 엑스에는 근거가 없다는 커뮤니티
노트가 붙었다. 10월 15일에는 러시아발 폐페스트가 중국 12개 성으로 번졌다는 글을 올렸으나 이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글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據傳)’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정보의 출처는 밝히지 않아 왔다.
◆ 北 “19일 전국 피복, 신발전시회
참관”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즉각 대응했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는 20일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 신발전시회-2026’을 둘러봤다고 보도했다. 경공업 부문의 의류와 신발 제품을
선보이는 이 전시회에는 리설주 여사와 김주애가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설이 확산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나온 보도였다.
함께 공개된 사진에는 김 위원장이 전시장에서 여성용
외투와 아동용 신발 등을 살펴보는 모습이 담겼다. 조선중앙TV 화면에는
김주애가 분홍색 아동용 운동화를 들어 보이고 김 위원장이 이를 들여다보는 장면도 실렸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당과 정부 간부들과 함께 전시회를 둘러보며 만족을 표시했다고 전했으며, 이번 전시회의 주제가 ‘새 제품 개발과 질 제고 열풍’이었다고 소개했다. 외신들은 북한의 이번 보도를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을 잠재우려는 조치로 풀이했다.
◆ 정부 “금시초문”… 사진
촬영 시점은 여전히 미확인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부처 당국자들은 해외 소셜미디어발 사망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정부 차원의 공식 성명이나 별도의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이 실제로 언제 촬영됐는지는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셰완쥔은 북한의 사진 공개 이후 해당 사진이 과거 기록 영상에서 꺼낸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이 주장 역시 근거를 내놓지 않았다. 폐쇄적인
북한 체제의 특성상 최고지도자의 건강 상태를 바깥에서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번에도 확인됐다.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는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보고에서 김 위원장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는 고도비만 상태이며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평가한 바 있다.
◆ 2020년 ‘99% 사망 확신’ 소동
되풀이
김 위원장을 둘러싼 사망설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4월 김 위원장이 한동안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심혈관계 시술 뒤 숨졌다는 소문이 국내외에 퍼졌다. 당시 탈북민 출신으로
국회의원 당선인 신분이던 지성호 씨는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이 공개되면서 소문은 일단락됐다.
이번 소동은 출처가 불분명한 개인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외신의 인용 보도를 거치며 국제적 ‘뉴스’로 둔갑하는 과정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최고지도자의 신변을 둘러싼 정보는 한반도 정세와 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처럼 받아쓰기보다 출처와 근거를 따지는 보도 태도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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