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6 (토)
오늘날 우리는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공허감을 호소한다. 기술 발전으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삶은 더 복잡해졌고, 글로벌 연결성은 높아졌지만 개인은 더 고립됐다.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다면, 150여 년 전 조선 말기 지식인들의 고민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 조선은 서구 문명이라는 거대한 충격파에 직면했다. 전통적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문명적 패러다임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조선의 사상가들은 어떤 대응을 모색했을까? 그 중에서도 『人與物開闢說』(인여물개벽설)이라는 텍스트는 당시로서는 놀랍도록 성숙하고 종합적인 문명론적 사유를 보여준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이중적 시각
이 텍스트의 첫 번째 혜안은 위기 진단의 균형감에 있다. 당시 상황을 "일 년의 가을이요 하루의 저녁때"라고 진단하면서, 거시적 필연성과 미시적 긴박성을 동시에 포착했다.
가을이라는 비유는 흥미롭다. 가을은 쇠퇴의 시기이지만 동시에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즉, 위기를 단순한 파멸로 보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의 전환점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하루의 저녁"이라는 절박함을 더해 안일한 대응을 경계했다.
이런 이중적 시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기후 변화, 불평등 심화, 기술 발전의 부작용 등 현재의 위기들도 단순한 파멸의 징조가 아니라 문명 전환의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다만 그 전환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느냐, 수동적으로 떠밀려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구 문명을 보는 냉철한 눈
두 번째 주목할 점은 서구 문명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이다.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서구 문명을 무조건 배격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극단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人與物開闢說』은 달랐다.
서구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무섭게 죽이는" 파괴력으로 인식하면서도, 그 불가피한 영향력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서구 문명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성취의 허상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천하로 옷을 입고 우주로 집을 삼"는 최고의 부와 권력을 얻어도, 정신적 기반이 없으면 "서리 맞은 낙엽"처럼 쉽게 무너진다는 통찰이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글로벌 문명을 대하는 자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역 전쟁, 기술 패권 경쟁, 문화적 갈등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과 주체적 대응 전략이다.
외적 변화와 내적 변화의 조화
세 번째 핵심은 이중 개벽론이다. 텍스트는 "유형의 개벽"(외적 변화)과 "무형의 개벽"(내적 변화)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도와 기술은 받아들이되, 정신적 주체성은 잃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과제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K-팝과 한국 영화가 세계적 성공을 거두는 것도, 전통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 아닌가.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하면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이중 개벽론의 실천이다.
급진과 보수를 넘어선 제3의 길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인여물개벽"의 총체적 사고다. 이는 인간과 사물, 정신과 물질, 개인과 사회의 통합적 변화를 추구한다. 혁명적 파괴도, 안주하는 보수도 아닌 유기적 전환을 지향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들 - 세대 갈등, 이념 갈등, 계층 갈등 - 도 이런 통합적 사고로 접근하면 새로운 해법이 보일 수 있다. 한쪽의 완전한 승리나 다른 쪽의 완전한 패배가 아니라, 양쪽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더 높은 차원의 종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150년 전의 지혜가 주는 교훈
『人與物開闢說』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문명적 위기 앞에서 필요한 것은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외적 변화는 받아들이되 내적 주체성은 잃지 않는 균형감이다. 그리고 파편적 대응이 아니라 총체적 사고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AI 시대의 도전, 기후 위기, 사회 불평등 등의 문제들도 결국 같은 원리로 접근할 수 있다. 기술 발전이라는 "유형의 개벽"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간다운 가치와 공동체적 연대라는 "무형의 개벽"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150년 전 조선의 지식인들이 보여준 성숙한 문명적 성찰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 극단을 피하는 균형감,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 주체성. 이것이야말로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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