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7 (토)
賈(값 가)에 깃든 이야기
♣ prologue : 덮개 아래 조개의 비밀
먼 옛날, 장터가 처음 열리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귀한 물건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보자기로 덮어두고, 값을 부르는 이에게만 살짝 보여주었지요.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값이란 무엇인가? 덮개 아래 감춰진 것, 그 가치를 헤아리는 일."
그래서 탄생한 글자가 바로 賈(가) 입니다.
襾(덮을 아) — 물건을 덮어 가려 놓은 모양
貝(조개 패) — 고대의 화폐, 곧 돈과 거래의 상징
덮개 아래 놓인 조개 화폐, 그것은 곧 '값을 매기는 행위', 장사의 근본이었습니다. 이 글자는 회의문자(會意文字)—두 가지 뜻을 합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 글자입니다.
● chapter 1 : 賈가 품은 네 가지 세계
한 글자 賈는 혼자서 네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사다(고)입니다. 덮개를 열고 물건을 고르고, 조개 화폐를 건네는 행위. 거래의 가장 오래된 장면이 이 글자 안에 살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좌판(고)입니다. 한 자리에 앉아 물건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 '앉아서 파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떠돌이 상인(商)과 대비되는 정착 상인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는 값(가)입니다. 물건에 매겨지는 가치, 보이지 않는 약속. 덮개 아래 감춰진 그것의 무게입니다.
네 번째는 성(가)입니다. 어느 날부터 이 글자는 한 집안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장사로 뿌리내린 가문의 자부심이 담긴 성씨입니다.
하나의 글자 안에, 사는 이도 있고, 파는 이도 있고, 값도 있고, 이름도 있습니다.
● chapter 2 : 賈가 여행을 떠나다 — 갈래단어의 세계
賈는 다른 글자들과 만나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펼칩니다. 마치 장터를 떠나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 나서는 상인처럼.
사람 인(人)을 만나면 → 價(값 가)
값을 매기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일입니다. 덮개 아래 놓인 물건이 사람의 눈과 마음을 거쳐야 비로소 '가격'이 됩니다. 價는 사람과 가치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나무 목(木)을 만나면 → 檟(개오동나무 가)
장터 곁에 그늘을 드리우던 큰 나무, 개오동나무. 거래가 오가는 자리에 뿌리를 내린 나무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장사의 글자가 자연의 글자와 만난 순간입니다.
눈 목(目)을 만나면 → 瞉(보다)
값을 매기려면 먼저 보아야 합니다. 덮개를 열고, 눈으로 살피고, 가치를 가늠하는 일. 賈에 눈이 더해지면 '살펴보다'라는 글자가 됩니다. 거래의 시작은 언제나 한 번의 응시였습니다.
▣ epilogue : 賈, 그 글자가 전하는 메시지
賈라는 글자를 다시 바라봅니다.
덮개(襾) 하나, 그 아래 조개(貝) 하나.
거창한 것이 없습니다. 감춰둘 물건 하나와, 그것을 주고받을 화폐 하나면 시장은 열렸습니다.
거기서 사는 이가 생기고, 파는 이가 앉고, 값이 매겨지고, 가문의 이름이 붙고, 사람의 마음이 더해져 '가격'이 되고, 장터 곁 나무에 이름이 내리고, 살피는 눈이 태어났습니다.
값 賈, 덮개와 조개의 만남이 품은 것은 인간이 서로의 가치를 헤아려 온 오랜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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