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원종한] “등대에서 하루를 지낸다고?” 말만 들어도 설레고, 상상만으로도 낭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부산 가덕도에 위치한 유서 깊은 등대는 매년 극소수 인원만 추첨을 통해 숙박 체험의 문을 연다. 운 좋게도 그 기회를 우리 가족이 얻었고, 그 순간부터 특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삼대가 함께한 빛의 여정
이번 여행은 단순히 바다로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70대 어머니 최옥례 여사, 고생 많았던 아내 정유미, 아들 현창이와 딸 라영, 형님 부부와 조카 예주까지 삼대가 함께한 소중한 1박 2일이었다. 아이들은 들뜬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았고, 어른들은 옛 추억을 곱씹으며 미소를 지었다. 세대마다 감정의 결은 달랐지만, 등대 아래에서는 모든 감정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100년을 넘게 바다를 비춰온 등대
1909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가덕도 등대는 부산항을 드나드는 수많은 선박들의 항로를 안내해 온 해양 교통의 이정표이다. 지금은 역사와 문화, 체험이 어우러진 해양 유산으로서 누구나 한 번쯤 머물고 싶어 하는 공간이 되었다.
해가 지고 등대에 불이 켜지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로 불이 돌아요!” 라영이의 외침에 모두가 밤하늘을 올려다봤고,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예전에도 저런 불빛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지...” 동해안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던 어머니의 어린 시절 기억이 이곳에서 다시 살아났다.
서로를 바라보는 식탁, 하나 되는 저녁
식사 준비는 그 자체로 완벽한 팀워크였다. 청도 한재 미나리와 삼겹살, 어묵꼬지, 싱싱한 쌈 채소, 정성스레 말아낸 계란말이와 따뜻한 쌀밥까지. 누구는 고기를 굽고, 누구는 쌈을 싸고, 아이들은 수저를 놓았다. 식탁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자리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주는 따뜻한 대화의 장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늘 마스크로 가려졌던 얼굴을 활짝 열고 환하게 웃던 예주, 애벌레 한 마리에 깜짝 놀라 뛰어다니던 형수님, 할머니와 팔짱 끼며 행복해하는 라영이의 모습은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소중한 풍경이었다.
한밤의 등대 불빛처럼, 마음에 켜진 기억
다음 날 아침, 높이 40여 미터의 가덕도 등대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수평선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하늘은 푸르게 열려 있었다. 우리는 등대를 배경으로 삼대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얼굴은 조금 헝클어졌지만, 웃음만큼은 누구보다 밝았다.
기억은 짧지만, 울림은 길다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이 여행은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을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대화를 다시 꺼내고, 서로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쉼표 같은 시간이었다. 가덕도 등대는 단지 바다를 비추는 구조물이 아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세대를 이어주는 빛이자 마음을 정박할 수 있는 든든한 항구였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에게 빛이 되어 주었다.
글 | (주)대한항공 항공기체사업부 원종한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