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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풍 속 화마와의 전쟁… 광양 옥곡 대형산불, 사람과 시스템이 산을 지켜냈다
기사입력 2026.01.23 23:28● 49ha 태운 초대형 산불, 1,467명 투입된 총력 진화
● 산림재난대응단·헬기 기장·광양시 공무원, 조기 진화의 숨은 영웅들
▲ 광양시 옥곡면 산불 현장
[검경합동신문 염진학 기자] 지난 21일 오후 3시 8분, 광양시 옥곡면 묵백리 산 233번지. 한 주택에서 발생한 불길은 당시 몰아치던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인근 산으로 비화됐다. 불은 옥곡중학교 뒤편 능선을 넘어 진상면 방향으로 확산되며, 불과 수십 분 만에 통제하기 어려운 대형 산불로 번졌다. 기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산불 발생 직후인 오후 4시, 광양시는 즉각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며 비상 대응 체계에 돌입했다. 이어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국가소방동원령이 내려졌고, 광양시 산림부서를 중심으로 산림청, 소방, 경찰, 군, 인근 지자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인근 시·군에서도 인력과 장비 지원이 잇따르며, 이번 산불은 단순한 지역 재난을 넘어 광역 대응 체계의 시험대가 됐다.
▲ 광양시 옥곡면 잔불 진화 현장
이번 산불로 피해 면적은 49ha에 달했고, 주택 1동 일부 소실과 창고 2동 전소라는 물적 피해가 있었다. 그러나 인명 피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옥곡면과 진상면에 신속히 발송된 재난문자를 통해 옥곡면 주민 266명, 진상면 주민 355명이 동사무소와 인근 복지센터,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하면서 최악의 상황은 막아냈다.
현장에는 산림재난대응단 36명, 공무원 650명, 소방 253명, 경찰 200명, 감시원 6명, 공중진화대 3명 등 총1,467명이 투입됐다. 고성능 산불진화차와 진화차, 소방차 등 장비만867대가 동원됐고, 첫날에는 수리온 헬기를 포함한 25대의 헬기가 쉴 새 없이 물을 투하했다. 여기에 열화상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이 투입돼, 야간과 연무 속에서도 화선과 잔불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산불 진화 현장 대책 회의(정인화 광양시장)
이 치열한 진화의 한복판에는 광양시 산림부서가 있었다. 특히 이강성 산림소득과장은 산불 발생 직후 현장으로 달려가 전체 상황을 파악하고, 산림청과 수시로 교신하며 야간 진화 전략을 세웠다. 10년 이상 산불 진화 경험을 쌓아온 그는 인력 배치, 헬기 운용, 관계기관 공조를 유기적으로 엮어낸 현장형 지휘관이었다. 기자의 눈에 비친 그는 ‘지시하는 관리자’가 아닌, 불길 앞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는 전문가였다. 전국 지자체마다 이런 산불 전문가 한 명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한 일몰 이후 현장은 더욱 처절했다. 강풍 속에서 이어진 야간 진화는 산림재난대응단과 특수진화대원 250여 명에게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그러나 캄캄한 산속에서도 대원들은 한 발 한 발 불길을 끊어냈고, 산림부서 직원들은 식수와 김밥, 간식, 음료를 현장 깊숙이 전달하며 대원들의 체력을 지켜냈다. 장기 산불을 대비해 훈련된 조직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 광양시 옥곡면 산불 헬기 진화 현장
특히 이튿날 새벽, 바람이 잠시 주춤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헬기 20여 대가 집중 투입되며 주불을 압도했고, 오전 10시 30분 마침내 광양산불 진화율 100%에 도달했다. 기자는 솔직히 이 시간대 진화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현장은 그 불가능을 현실로 바꿔냈다.
진화 과정에서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정인화 광양시장도 현장을 찾아 진화대원과 관계자들을 직접 격려했다. 한파 속에서 이어진 강행군에 이들의 격려는 현장 대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
이번 산불은 주불 진화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22일과 23일 연기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뒷불 정리가 이어졌고, 24일에도 재발화 방지를 위해 산림재난대응단 3개 조 36명이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 잔불 진화 참여 광양시 공무원(좌 전인화 시장)
특히 일몰이 지난 시각에도 “내 집에 불이 난 것처럼” 물을 투하하던 헬기 기장들의 헌신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이번 옥곡 산불은 자연재해 앞에서 사람, 시스템,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히 보여준 현장이었다. 광양의 산을 지켜낸 것은 결국,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의 책임감과 사명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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