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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전후사] 삼국간섭과 을미왜변 3

기사입력 2026.09.14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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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미사변은 일본의 침략 행위가 아닌, 고종과명성황후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삼국간섭을 유도해낸 사건입니다. 이는 일본의 침략을 은폐하려는 의도에서 '을미사변'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1. 을미사변의 재해석: 삼국간섭 유도와 일본의 침략 은폐

    A historical illustration depicting the complex geopolitical maneuvering between Korea, Japan, Russia, and China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emphasizing the intricate web of alliances and betrayals that led to the Eulmi Incident and the subsequent Triple Intervention.

    을미사변은 일본의 침략이 아닌,고종과명성황후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삼국간섭을 유도한 사건이며, 이는 일본의 침략을 은폐하려는 의도로 '을미사변'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강의는 삼국간섭과 을미왜변을 중심으로 민비(명성황후)와 고종의 정치적 역할을 재조명하며, 친일 세력의 왜곡으로 형성된 부정적 평가를 사료에 근거해 바로잡으려 한다.

    강의 서두는 광복절 기념사를 계기로 친일 청산 문제를 다룬다. 강사는 이 문제가 여야나 지역, 이념을 초월하는 과제라고 주장하며, 이승만 대통령의 친일파 결탁을 현대 정치 갈등의 뿌리로 지목한다. 이어 민족 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들도 친일과 반일이 뒤섞인 복잡한 맥락 속에 놓여 있었음을 지적하고, 안익태처럼 시대적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한다.

    민비 암살 사건은 일본의 정교한 계획 아래 진행된 것으로 설명된다. 훈련된 낭인들이 일본군과 협력해 암살을 실행했으며, 일본은 사건 이후 국제 여론을 의식해 재판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강의는 이를 단순 암살이 아니라 식민지 정책과 결부된 사건으로 규정하고, 고종과 민비가 러시아와의 외교를 통해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려 했던 점을 강조한다.

    한편 민비를 비판하는 시각도 함께 소개된다. 권력 장악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을 희생시켰다는 주장, 국민이 굶주리는 동안 사치스러운 연회와 제사를 벌였다는 비판, 러시아 군 관계자들이 고종과 민비의 정치적 능력을 의심했다는 평가 등이 언급된다. 다만 강의는 이러한 부정적 서술 상당 부분이 일본의 소문과 조작에서 비롯된 왜곡임을 전제한다.

    왕실 재정 문제도 다뤄진다. 국가 재정과 왕실 경영이 분리되면서 호조와 내수사 사이에 자원 확보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고, 이는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민비는 전국적으로 자금을 운용해 항일 투쟁의 기반을 마련하려 했으며, 관직 매매의 만연은 재정난 속에서 나타난 사회적 부패로 설명된다.

    강의 후반부는 민비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한다. 그녀를 조선 최고의 정치적 역량을 지닌 여성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도움 없이 개화를 지지했으나 일본의 침략 의도와 충돌했다고 본다. 대원군과의 권력 갈등, 조선 최초의 황후가 된 위상, 고종을 도운 애국적 정치 참여, 19세기 여성의 정치 참여라는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의 리더십 등이 함께 조명된다.

    결론적으로 강의는 일본의 허위 정보와 정부의 조작으로 형성된 왜곡된 역사관을 경계하며, 공신력 있는 사료에 근거해 명성황후의 실제 모습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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