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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무궁토록 빛나 겨레의 환한 등불이 되어질 꽃 ”나라 사랑 꽃 무궁화"

기사입력 2021.11.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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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기변환]캡처.JPG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무궁화”라는 명칭은 “목근(木槿)”이라는 한자음이 변한 순 우리말이다.

     

    한편 무궁화의 최초 한글표기는 한글 창제 이후인 1517년 최세진이라는 학자가 저술한 ‘사성통해’라는 문헌에 처음 나온다.

     

    세종 25년 훈민정음을 창제하며 무궁화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불려졌다고한다.


    겨레의 정신과 역사, 미래를 담고 있는 꽃,  5천년 우리 민족 시작과 함께 해 온 꽃, 단군 고조선시대부터 ‘한화, 천지화, 근수’ 등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선단 둘레에 심어져 신성시 하였다.


    신라 화랑도들이 머리에 꽂고 다녔던 젊음의 꽃으로 대표적 표상물이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근화향으로 불리었을 정도로 무궁화가 많았던 시기로 무궁화라는 명칭이  고려 고종때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 최초로 나와 이 시기는 무궁화 어원 연구에 중요한 시기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조선 왕조의 상징인 이화(배꽃)에 무궁화가 가려졌었지만,실학자들에 의해

    많은 문헌으로 활발하게 소개되었고,국학 운동에 의해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부각되어 ‘무궁화 나라’라는 말이 자주 쓰였습니다.

    조선시대에 훈민정음이 창제(1443년)되어 무궁화의 한글 명칭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장원 급제에 하사한 존귀한 꽃이랍니다.


    우리의 정신까지 말살하려 했던 일제는 무궁화를 국민들과 멀어지게 하려고  무궁화에 온갖 박해를 가했는데, 해외에서 독립 운동을 하던 분들이 무궁화를 우리의 표상으로 내세우자 전국에 있던 무궁화를 뽑아 불태우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심을 정도로 가혹한 수난을 겪으며 우리 민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민족의 혼이다.

     

    독립문 건축 기념 행사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처음 사용되었다.


    우리 민족의 밝고 강인한 정신력과 순결하고 근면한 정신이 무궁화의 생태적 특성과 유사하여 자연스럽게 나라꽃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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