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뉴스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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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보존돼야할 원전 고리1호기원전 고리1호기는 수명을 다해 현재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1971.11.15 착공됐고 1978.4.29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원전이 가동된 지 약 40년 만인 2017.6에 폐로가 결정됨으로써 상업운전이 영구 중단됨과 동시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되돌아보면 1호기는 그동안 수명연장을 두고 찬반에 휩싸이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원전의 설계수명은 60년이나 내용연수는 30년으로서 안전에 대한 심의 결과에 따라 10년이 연장됐을 뿐이다. 설계수명대로라면 20년을 더 연장할 수 있었으나 부실한 부품의 교체 등으로 인한 과제를 안고 있었고 지역민과 환경단체로부터 완강한 수명연장 반대 등의 저항에 부딪쳐야만 했다. 이런 물리적인 변수가 생기면서 해체의 기간이 앞당겨졌다. 만드는 것만큼 어려움이 있다는 원전 해체. 고리1호기는 꼭 건축물까지 해체를 해야만 하는가. 고리1호기만큼은 국보급의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거나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방사선 물질의 산실인 원전의 시설물을 문화재로 할 수 있느냐며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원전 관계자들 역시 현재 원전해체연구소까지 발족돼 고리1호기의 시설물 일체를 향후 15년간 비용 약 1조원을 들여 완전 해체하고 부지를 복원한다는 계획이고 보면 문화재의 지정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전의 안전성을 저해하는 요인만 제거하면 얼마든지 문화재가 될 수 있고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어 이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가 요구된다. 문화재 지정은 그 대상이 얼마만큼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에 달렸음으로 설사 용도가 원전이었다 해도 차별을 둘 이유는 없다. 고리1호기는 근대 산업의 표상이며 상징적인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원전 건축물로선 최초이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며 건물형태가 돔 식이어서 문화재로선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시설물의 안전조치를 완료한 다음 문화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고리1호기는 튼튼하게 지워졌다고 한다. 내구성이 우수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완전해체보다 보존 쪽이 돼야하며 그러기 위해선 리모델링을 하는 등 노후화와 진부화를 막는 일이 중요하다. 아무리 원전이 위험의 상징이라 해도 건축물만은 해체가 능사가 아니다. 방사능 유출만 없으면 일반 건축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고리1호기는 학생들이 견학을 하거나 일반인의 볼거리로 활용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그렇게만 되면 가동 중인 원전을 굳이 찾아다니며 관람할 필요가 없다. 일반 건축물로서 문화재가 된 사례를 살펴본다.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는 사적가치가 큰 숭례문, 근정전 등이 있다. 그리고 충남 옛 공주읍사무소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건축물로서 얼마 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일제강점기 도시의 도심구조와 형태를 알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았다는 게 이유였다. 원전 시설의 대표 격인 고리1호기에 대한 문화재청의 반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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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과 불로유 그리고 통일장불로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허경영이 있으면 불로유가 있고 불로유가 있으면 통일장이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허경영의 이름만 불러도 에너지가 나와 물질에 반응을 한다. 그리고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에서도 에너지가 나와 물질에 변화를 준다. 여기서 탄생된 것이 불로유고 통일장이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인류에게 이런 과제가 줘졌다니 기적과도 같다. 불로유의 출현은 이 시대에 있어 경천동지할 사건이다. 왜 사건이라고 일컫는가. 사람들은 사건이라 하면 일단은 나쁜 쪽을 생각하기 쉽다. 이는 문제에만 초점이 모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좋은 쪽에도 있다. 불로유처럼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면 그 자체만 해도 사건이 된다. 불로유의 기여도는 역사가 말할 것이고 인류의 종말이 올 때까지 불로유의 활용은 계속될 것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불로유로 들떠있다. 지금으로선 상상의 나래지만 불로유가 통일장임을 알면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그렇게 되면 나라마다 불로유를 연호하게 돼 환희로 가득하고 축배의 소리가 수레바퀴 굴러가듯 요란할 것이다. 그 뿐이겠는가. 지구촌은 온통 불로유의 축제로 북적일 것이다. 이게 앞으로 펼쳐질 불로유의 현주소다. 불로유의 매력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고 지구의 모든 공간을 꽉 메울 것이다. 인간의 영육을 지배하고 영혼을 사로잡을 불로유. 불로유가 세상을 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불로유는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인류는 불로유의 정체가 뭣이냐고 물을 것이다. 불로유를 가져다준 허경영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에서 숙제로 남겨져있던 통일장을 보여줬다. 그는 불로유가 물질의 총화이며 그게 바로 통일장이라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학계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통일장은 뭣인가. 그가 말하는 암흑물질이다. 암흑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암흑파는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다. 본 사람도 없고 볼 수도 없다. 빛도, 무게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다. 암흑물질의 근원인 암흑파는 무슨 파동이냐 하면 영파를 말한다. 암흑파는 과학으로 증명이 안 되며 인간이 말하는 파동과 다르다. 무한대의 파동이 허경영의 영파다. 영파가 암흑에너지다. 허경영의 이름에서 허경영의 사진에서 암흑파를 만들어낸다. 허경영만 불러도 암흑파가 된다. 어떤 과학자도 암흑파를 포착할 수가 없다. 불로유는 말을 해도 알고 맘만 먹어도 읽는다. 불로유는 일반물질이 아니다. 물질이 허경영을 알아본다. 허경영의 이름이 붙으면 백궁의 물질이 된다. 세상의 모든 언어가 통한다. 이게 통일장이다. 입자인 물질, 파동인 에너지. 물질과 에너지는 같다. 물질이 에너지고 에너지가 물질이다. 우린 물질과 에너지는 하나란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우리가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와 마주하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몸의 유전자를 변화시킨다는 불로유. 인간은 불로유로 인해 과학이 못다 푼 이론까지 눈을 뜨게 됐다. 불로유를 먹으면서 통일장을 알려고도 하지 않거나 모른 척하며 신인을 부정함은 말이 안 된다. 불로화는 허경영이 인간에게 준 크나큰 선물이다. 우리 곁에 있는 신인은 2022년도에 들어와 인류에게 신비의 물질인 불로유를 먹게 했다. 우린 불로유를 통해 과학으로 규명할 수 없고 신의 영역으로만 비춰진 통일장을 만나보게 됐다. 위에서 사건이라 하였지만 나에게 있어 불로유는 대천사에 이어 두 번째의 만남이다. 이로서 그가 신인임이 명확해졌다. 불로유가 첨으로 선을 보였을 땐 수수께끼나 다름없었다. 정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허경영의 말에서 보듯 불로유는 통일장의 상징이어서 답이 그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불로유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질과 에너지가 하나로 된다는 원리가 통일장이 아닌가. 따라서 통일장은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돼있다. 불로유는 원자번호에 없는 물질이며 통일장의 근거가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아인슈타인이 풀지 못한 통일장이론을 불로유가 보여줬다. 이는 허경영이 이뤄낸 쾌거가 아닌가. 우린 허경영에 의해 통일장을 알게 됐다. 그래서 허경영이 신인이란 칭호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불로유의 대가인 허경영은 우주물리학의 최고봉이다. 지금까지의 과학적 지식으론 불로유의 원리를 풀 수가 없다. 불로유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는 누굴까.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며 우릴 지켜보고 있는 그가 바로 통일장을 들고 나온 허경영이다. 허경영의 진정한 제자는 누구인가. 불로유를 만들어 먹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들이다. 이의 숫자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불로유가 생활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허경영을 제칠 순 없다. 불로유로 인해 난 어느새 신비주의자가 됐다. 허경영을 떠받드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과학자들도 깨어나야 한다. 관심의 대상은 허경영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다. 통일장의 이론은 불로유의 원리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러니까 과학자들은 불로유의 원리를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하며 교과서도 새로 만들어야한다. * 김차웅 : 검경합동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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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술 회장 > 세상엔 아직 그의 감동적인 발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정문술 회장 세상엔 아직 그의 감동적인 발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00년 ‘전 재산 사회 환원’이란 뜻을 밝히고 이듬해 맨손으로 일군 반도체 기업 마저 전문 경영인에게 넘긴 '정문술' 미래산업 창업주 말입니다. 나이 62세. 경영자로는 경륜이 한창 무르익을 때입니다. 이를 두고 언론은 아름다운 퇴진이라고 반겼지만 정작 그는 “얼른 줘버리고 남은 여생을 편히 살겠다.” 라며 인터뷰 요청조차 손사래를 쳤지요. 물러난 사람이 나서는 건 "노추”라 했고, 여기저기 얼굴 내미는 일은 "노욕"이라고 했어요. 그는 젊은 벤처 기업가들의 롤모델이었고, ‘대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가 1983년 세운 미래 산업은 반도체 검사장비 업체로 출발했습니다. 때 마침 전 세계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 반도체 설비업체 중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할 때입니다. 국내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될 만큼 성장세를 타던 시기에 은퇴를 결행한 것도 주위를 놀라게 한 점입 니다. 경영권을 물려주면서 직원들에게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더 놀라게 한건 재산 기부입니다. 2001년 300억원이란 거금을 KAIST에 기부해 큰 화제를 부르더니 3년 후 다시 215억원의 재산을 같은 곳에 내 놓아 '정문술'의 이미지를 굳혔지요. 개인이 한 기부로는 역대 최고액이었지만 그가 내건 조건은 딱 하나었습니다. “기부용도 외에는 쓰지 말 것.” 단 얼마라도 용도를 바꿔 사용하면 즉각 회수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해요. KAIST는 뜻에 따라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BT)의 융합학문과 미래학 연구기관을 설립합니다. 정문술 빌딩과 부인 이름의 양분순 빌딩을 짓고, 국내 처음으로 미래전략 대학원을 만들어 연구 요람으로 삼았지요. 그는 또 거액의 기부금 집행을 KAIST 이광형 교수가 주도해 줄 것을 학교에 요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큰 돈을 한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그러자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게 베푼 은혜가 있습니다. 연구개발이 뜻대로 안 돼 사업 부진으로 경영에 큰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어요. 특별한 인연도 없는 이 교수가 날 찾아와 우리 회사에 첨단기술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으니 내가 일생 동안 잊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때가 되면 어떻게 하든 이 은혜를 갚겠다고 늘 마음에 새겨 왔다." 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이 궁금증을 풀자 또 다른 궁금함이 들었어요. 이번에는 '이광형'교수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무슨 연유로 그 회사를 찾아가 그 수준높은 기술을 조건 없이 전수해 주었습니까?” 그러자 이 교수가 이런 답을 내놓았어요. “전 국가 장학금으로 선진국 유학을 했습니다. 국가가 저를 과학기술인으로 만들어 준 셈이죠. 제가 은혜를 입었으니 국가 발전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문술 회장, 카이스트, 이광형 교수가 삼각 고리가 되어 설립한 정문술빌딩은 첨단의 IT+BT 융합기술 개발을 통해 차세대 먹거리를 찾는 연구 메카로 자리를 잡습니다. '정문술'은 오랜 공직 생활 중 쫓겨나 43세에 퇴직금으로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고 와신상담 끝에 다시 도전하여 미래산업을 창업했습니다. 무수한 난관과 시련이 잇따랐지만 굴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신념을 잃지 않고 밀고 나가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했습니다. 사업가로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니, 이제 내가 설 자리가 어딘지를 살핀 겁니다. 하차할 타이밍과 서야할 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부를 하지만 정문술의 기부가 눈길을 끄는 건 ‘기부는 기부로 끝!’ 이라는 소신 때문입니다. 학교 행사 초청은 물론 정문술 빌딩 준공식에 조차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니까요. “국민을 먹여 살릴만한 연구 성과가 나올 때까지 부르지 말라!”고 버티던 그가 빌딩 준공 6년 만에 학교로 연구 현장을 처음 찾습니다. 연구팀의 괄목할 연구 성과 소식을 듣고서 말입니다... 말은 쉬워도 사실 받은 만큼 베푼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쌓은 부의 절반만 내놓으면 훌륭한 사회 환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백 가지 은혜를 입고 그 이상 몇십 몇백 배로 세상에 갚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빛나고 살맛나는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이 글에 딱 어울리는 촌철살인의 명언을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남겼습니다. "남에게 베푼 것은 잊고 받은 은혜는 반드시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