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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논단) 두 대륙의 민중 영웅, 투팍 아마루와 전봉준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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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동학논단) 두 대륙의 민중 영웅, 투팍 아마루와 전봉준이 남긴 것

140년의 시차를 넘어 울리는 민중의 함성


 18세기 페루 안데스 산맥과 19세기 조선 호남 평야. 지리적으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두 곳에서 역사는 놀라울 만큼 유사한 장면을 연출했다. 1780년 투팍 아마루 2세가 스페인 식민 통치에 맞서 봉기한 지 114년 후, 1894년 전봉준은 고부 관아를 점령하며 동학농민혁명의 봉화를 올렸다. 두 영웅의 삶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억압받는 민중은 어떻게 저항하는가?


특권층의 탐욕이 빚은 비극


 투팍 아마루 2세, 본명 호세 가브리엘 콘드르칸키는 잉카 왕족의 후손이자 지방 유지였다. 그에게는 안정된 지위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스페인 식민 당국의 미타 제도, 즉 원주민을 광산과 농장에 강제로 끌고 가는 야만적 착취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300년간 지속된 수탈은 원주민 사회를 황폐화시켰고, 그는 마침내 1780년 11월 봉기를 일으켰다.

 전봉준 역시 몰락 양반 출신의 서당 훈장이었다. 그가 분노한 것은 조병갑을 비롯한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였다. 만석보 수세 강탈 사건은 고부 농민들의 마지막 인내심마저 무너뜨렸다. 전봉준은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동학의 평등 사상을 기치로 민중을 조직했다.

 두 지도자 모두 스스로 안전한 위치에서 침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것이 진정한 지도자와 기회주의자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개혁의 꿈, 그리고 현실의 벽


 투팍 아마루는 단순한 반란자가 아니었다. 그는 미타 제도 폐지, 중간 착취자 제거, 원주민과 메스티소의 권리 회복이라는 구체적 개혁안을 제시했다. 안데스 전역에서 수만 명이 그의 깃발 아래 모였다. 하지만 스페인 왕실은 강력한 군대를 파견했고, 1781년 5월 투팍 아마루는 쿠스코 광장에서 잔혹하게 처형당했다.

 전봉준 역시 단순히 부패 관리를 징벌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집강소를 설치하여 토지 개혁과 신분제 폐지를 실천하려 했다. 전주화약 이후 폐정개혁안 12개조를 제시하며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 하지만 일본군의 개입과 관군의 탄압으로 농민군은 패배했고, 전봉준은 1895년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두 봉기는 당대에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을 패배자로 기록하지 않았다.


실패한 혁명이 남긴 성공한 유산


 투팍 아마루의 봉기는 40년 후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시몬 볼리바르를 비롯한 독립 지도자들은 그의 정신을 계승했다. 오늘날 페루를 비롯한 남미 전역에서 투팍 아마루는 민족 해방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좌파 게릴라 조직이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질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다.

 전봉준의 동학농민혁명 역시 한국 근현대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반봉건, 반외세, 평등 사상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건국 이념에 계승되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두 영웅의 육신은 처형당했지만, 그들의 정신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순교를 통해 더욱 강력한 역사적 동력이 되었다.


2025년,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투팍 아마루와 전봉준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불의를 목격했을 때 침묵할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현대 사회는 노골적인 식민 통치나 봉건적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이 만연하다. 부의 양극화, 노동 착취,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투팍 아마루가 원주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듯, 전봉준이 농민의 눈물을 방치하지 않았듯, 우리는 주변의 불의에 얼마나 민감한가?

 두 영웅은 또한 조직화된 민중의 힘을 보여줬다. 개인의 분노가 집단적 행동으로 전환될 때 역사는 움직인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투표, 집회, 언론이라는 합법적 도구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느냐의 여부다.


영웅은 죽지 않는다


 투팍 아마루는 처형당하기 직전 이렇게 외쳤다고 전해진다. "나 혼자만 죽는 것이 아니다. 너희도 곧 죽을 것이다." 실제로 스페인의 식민 제국은 무너졌다. 전봉준 역시 "내가 죽은 후에도 이 땅에 정의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다. 그의 예언대로 한국은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두 영웅의 이야기는 "옳은 일을 하다 죽는 것이 헛되지 않다"는 진리를 증명한다. 그들은 안데스와 호남 평야에서 각각 쓰러졌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은 대륙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로 자라났다.

 2025년 오늘,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주의는 투팍 아마루와 전봉준 같은 선구자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이 유산을 지키고 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무관심 속에 퇴보를 방치할 것인가?

역사는 반복해서 증명한다. 민중의 함성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투팍 아마루와 전봉준, 두 영웅의 정신은 지금도 억압받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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